• 최종편집 2019-09-19(금)

양평3.1역사탐방- 항일독립운동의 도시 안동을 찾다!!

양평3.1운동100주년기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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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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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답사 전체사진 임청각.jpg

지난 514() 양평3.1운동100주년기념사업 양평3.1역사탐방팀은 안동을 찾았다. 지금은 도립기념관이 된 안동의 경북독립기념관과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내앞마을. 그리고 임청각을 방문했다. 광복회 양평이천연합지회가 주최하고, 양평3.1운동기념사업회가 주관하고, 양평군이 후원한 사업으로 탐방팀은 광복회원과 3.1운동기념사업회 및 학생을 포함한 일반인으로 구성되었다.

 

9시에 출발한 버스는 12시에 안동에 있는 경북도립독립기념관에 도착했다. 식사 후 다시 찾은 기념관 마당에는 독립운동기념비가 우리를 기다렸다. 1000여명에 달한다는 독립운동가 이름이 비의 중심에서 양편 날개를 편 듯이 낮고도 길게 이어진 독립운동기념비는 그 자체가 감동이었다.

 

기념관은 크게 전시실과 경상북도 학생들의 필수코스로 기숙시설과 식당을 갖춘 강의실이 별도의 건물로 총 2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찾은 전시실에는 항일의병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독립운동가의 여러 행적들을 살필 수 있었다. 유치원과 초등학생들이 가득한 전시실에서 해설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모두가 가장 관심을 보인 것은 의병사진과 6.10만세 사건의 주역인 권오설 철관 앞이었다. 3.1독립운동에 놀란 일본제국주의는 6.10만세를 사전에 차단하고, 주역인 권오설을 심한 고문과 함께 철관을 만들어 덮어 버렸다. 전설처럼 떠돌던 권오설 철관설은 근래 집안에서 합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어 기념관에 전시됐다.

인덩딥시 헤살.jpg

한편, 의병에서 가장 먼저 뜬 화면은 맥켄지 기자의 양평의병사진이었다. 모두들 , 저거 우리 양평에서 짝은 건데라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다음부터는 꼭 저 사진의 출처가 양평임을 밝혀달라는 부탁을 뒤로 하고, 오후 3시 경 우리가 간 곳은 내앞마을이었다. 낙동강이 마을 앞으로 흐른다고 해서 불려진 의성김씨 마을은 청계 김진의 종택과 여러 고택들이 마을 곳곳에 남아있어 과거의 화려했던 내력을 말해주고 있었다. 특히 눈길이 가는 곳은 혁신유림으로 분류되는 백하 김대락의 고택 백하구려였다.

 

안동은 퇴계 이황과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한 유림의 고장이다. 안동 하면 떠오르는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한 퇴계학맥이 도도히 흐르는 위정척사 유림의 도시였다. 내앞마을 김대락도 퇴계학맥을 이어가는 유림이었다. 하지만, 그는 계몽운동을 지향하게 되었고, 민력양성을 통한 구국계몽운동으로 협동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기념관은 바로 협동학교가 있던 자리 위에 세워졌다. 노유의 유림이 자기성찰을 통한 일대 혁신으로 세워진 협동학교는 지역의 새바람을 일으켰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내앞인들은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기지를 건설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11년 삼원포에서 1930년 하얼빈 취원창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여정을 이어간다. 망명 초에 경학사, 공리회, 신흥무관학교, 백서농장, 부민회 등을 차례로 설치하여 독립군기지를 개척하였다. 3.1운동 이후에는 한족회, 전만통일회의, 대한통군부, 대한통의부, 국민대표회의, 정의부, 혁신의회, 한국독립당을 조직하여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다. 김대락을 비롯하여 김동삼, 김만식, 김규식, 김장식, 김성로 등 내앞마을 출신의 걸출한 독립운동가들이 배출되었다. 그밖에도 무수히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는데, 안동에는 이렇게 집안이 대거 만주로 향하거나 무수한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집안들이 여럿이다. 내앞마을 김대락의 여동생 김우락이 시집 간 임청각의 석주 이상룡 일가 역시 그러했다.

안동답사 임청각 군자정.jpg

내앞마을의 따가운 햇살을 맞으며 이어진 답사 장소는 임청각이었다. 국무령,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인 석주 이상룡의 임청각은 일본제국주의가 99칸 저택 사이로 철길을 내버린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반토막 난 임청각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퇴계 이황의 고성이씨를 이끌었던 석주 일가의 혼이 여전히 집안 곳곳에 서려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청각은 석주의 동생 이상동, 이봉희, 아들 이준형, 손자 이병화가 태어난 곳으로 그들은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독립군을 기르기 위해 경학사, 부민단, 한족회, 서로군정서를 이끌며 서간도지역의 독립운동을 지도하고, 1925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에 올라 민족운동을 이끌었던 석주 이상룡은 나라를 찾기 전에는 내 유골을 고국으로 이장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에 후손들은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끈질기게 항일운동을 펼쳤다. 임청각에서 태어난 인물 모두가 독립운동가가 된 고성이씨 집안의 후손들 가운데는 자신의 집안 내력도 모른 채- 고아로 떠돌기도 했다니 빚을 진 느낌이다.

 

유림의 도시 안동은 1000여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경상북도 항일독립운동의 메카였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 양평3.1역사탐방은 오후 9시 양평에 도착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함께 간 답사참가자들은 (유흥도 없고, 관광도 없었지만) 너무 즐겁고 유익했다고 입을 모았다. 남녀노소 모두를 만족시킨 것은 그러나, 경상북도 안동 독립운동가들이 남긴 역사의 힘이었을 것이다. 우리 지역 항일독립의 역사도 한 눈에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만드는 3.1안동역사탐방이었다. 광복회 양평이천지회와 양평3.1운동기념사업회는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으로 2019년 총 세 차례의 양평3.1역사탐방을 준비했으며, 안동은 그 첫 번째 사업이었다.

 

안동답사 체험.jpg

안동답사 만세 사진 앞.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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